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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작성자 닉슨
작성일 2018-08-30 (목) 16:57
ㆍ조회: 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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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칭의 교리는 종교개혁 신학사상의 기본 신조였다 ”
이신칭의 교리는 종교개혁 신학사상의 기본 신조였다
• 김영수
• 승인 2016.09.02 00:01(코람데오닷컴 기사)


Ⅰ. 서론
 
 ▲ 김영수 장로 / 고신대에서 기획부실장, 교무부처장, 사무처장을 역임하였으며, 고려신학대학 및 Midwest Univ.에서 공부하였다.
종교개혁시기의 특징
종교개혁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근대에 일어난 대사건이다. 중세는 476년부터 1453년까지로 분류하는데, 서로마제국의 멸망이후로 부터 동로마 제국의 멸망까지를 중세로 분류한다. 근대는 1453년 동로마제국의 멸망시점으로 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를 말한다. 근대는 유럽의 전성기로서 르네상스(14~16), 항해시대(15후반~18중반), 종교개혁(15~16), 중상주의(15~18), 과학과 인문학의 발달, 산업혁명과 자본주의(16~19), 민주주의, 제국주의의 열강시대로 이어진다. 근대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로 한다.
종교개혁은 중세(476~1453 또는 1492)의 암흑기를 갓 벗어난 시점 초기에 발생하였다. 종교개혁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시대적 상황과 맞 물려있는 내적 변혁이다. 그 파장과 효과는 全 구라파와 세계로 번지게 되었다. 그런데 현대의 시류나 상황으로는 이전과 같은 형태의 제2종교개혁이 일어날 공산은 매우 희박하다. 지금은 조금 다른 형식과 방법에 의한 제2종교개혁을 추진해야 된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는 제1차 세계대전(1914년 ~1918년)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까지의 시기를 현대로 분류한다. 제국주의 열강과 식민지배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미소 냉전시대는 1980년대까지로 특정 지운다. 1990년 이후 세계화, 과학기술화, 지식정보화 라는 3대 경향(tendence)의 흐름 속에서 지구촌은 하나의 생활권, 정보권, 경제권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므로 제2종교개혁 방안은 새로운 방식이 모색되어야 된다고 본다. 그렇지 아니하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과제가 남는다.
제1 종교개혁의 발단
종교개혁의 원인과 당위는 중세 로마교회의 교황이 유럽의 여러 국가를 지배하는 가운데, 한때는 군주나 황제까지도 임명을 한 적이 있었다. 이에 세속과 권력을 잡게 된 교회는 점점 부패해지고 타락하게 된 것이다. 로마교회의 전통과 제도가 성경 말씀의 권위나 원리와 동등시 하거나 또는 상위 개념으로 작용하면서, 성경적 교회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점에 대 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프로테스탄트의 등장은 영어‘Protest’항의하다. 반박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어 부르게 되었다.
종교개혁 당시 이신칭의 교리(Justification by faith)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대사(大赦, indulgentia) 즉 면죄부(免罪符)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신실한 사제이며 비텐베르크대학 교수인 루터가, 개인 한사람이 지은 죄를 사하여 주는 방식으로, 신도들이 일정한 돈을 지불하면, 면죄부라는 종이쪽지 문서를 준다는 허황된 웃지못할 상황들에 대한 충격과 분노로 발생된 결과가 루터의 95개 조항 반박문 내용이다.
종교개혁(the Reformation)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는 내용의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므로 써 시작된 사건이다. 95개조의 명제는 대사(indulgentia) 이른바 면죄부에 대한 논박이었다. 대사는 일정한 사람에게 교회가 고해성사의 보속(Satisfacio)을 면제 받도록 하는 제도를 뜻한다. 초대교회의 고해성사는 교회로부터 추방된 자들이 배교는 물론 계속 문제를 일으키니까, 사제 앞에서 고해성사를 실시한 후에 교회가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도입된 것이다. 11세기 말부터 '일정한 헌금을 내면 제공하는 면제부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르네상스 시대(14세기부터 16세기)에 극에 달했다.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대성당을 짓기 위해 1506년 헌금을 통한‘대사’를 선포하였으며, 특히 독일 지방에 선포된‘대사’조건들이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로마가톨릭의 사제 신분인 루터가 교황청에 대항한 대사 논박은 파란을 넘어 종교개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어 세계 역사를 바꿔놓게 된 것이다.
종교개혁 사건은 부패한 교회에 대해,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강조함으로 써, 교회를 새롭게 변혁시키고자 했던 신학운동으로 간주된다. 독일에서는 루터를 중심으로 이 신학운동이 일어났다. 한편 제네바에서는 칼빈을 중심으로 이 신학운동이 꽃을 피웠으며,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에 의해 프로테스탄트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칼빈의 제자인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개혁교회 신학을 전함으로써 장로회 전통을 심었다. 로마가톨릭의 십자가 신앙을 세속과 권력이 대신하게 되면서 부터 세계의 역사는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변혁(revolution)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츠빙글리와 존 낙스가 당시 로마가톨릭의 사제 신분이었음에도 루터와 칼빈과 합류하여 종교개혁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제2 종교개혁의 과제와 이를 준비하는 방안
현대의제2 종교개혁 방안은“정신개조”와 같은 방식의 운동을 전개하므로 써, 제2종교개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현세에 이르러서 특히 프로테스탄트의 후예인 우리 개신교회에서 종교개혁 당시의 이신칭의 신학 사상을 왜곡(distortion)하거나 부정(deny)하는 듯한 주장의 글이나 저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은, 제2종교개혁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런 반동은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역작용으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과제를 던져 주게 된 것이다. 미래의 제2종교개혁은 제1종교개혁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부분만 바로 잡으면 될 것 같다. 따라서 제2종교개혁은 제1종교개혁에 대한 신학적 부정이나, 교리적 부정과 같은 왜곡하는 부분을 바로 잡거나 재수정하기 위해, 이를 엄격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전개하면 된다. 우리시대,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걸출한 신학자가 나타난다고 하드라도 영적, 학문적 권위가 루터와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 당시의 인재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또한 찾을 수도 어렵다. 그렇다면, 제1종교개혁의 정신과 신앙, 신학을 유지 보존하는 방안으로 제2종교개혁을 추진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이 선다. 이는 단지 현세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온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제2종교개혁의 원리나 근본 취지는 어떤 조직이나 제도에 의한 강제하기 보다는, 근본 목표는 성경적 신학과 교리를 확립하여 성경적 교회로의 회복을 통해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영적 경건운동이라야 한다는 점이 전제된다.
제2종교개혁의 방안은 누군가에 의해 다시 깊이 연구되고 발표되기를 기대해 본다.
개혁자들이 주창한 신학 사상
개혁자들의 신학적 사상은 다섯 솔라(Five Solas) 로 요약된다.
Sola Scripture(오직 성경) : 성경만이 그리스도교 교리의 원천이며, 진리를 규정하는 법칙이며 유일한 최종 권위를 가진다. Solus Christus(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와 은총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Sola Gratia(오직 은혜): 하나님의 은혜로, 은총으로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Sola Fide(오직 믿음):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이 은혜를 받는다. soli Deo Gloria(오직 주님께서 영광 받으심) : 인간 구원을 통해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신다.
Ⅱ. 본론
필자의 칭의론에 관한 글은 다양한 의견을 열거하기 보다는 우리 고신교회가 지향하는 신학사상과 걸 맞는 칼빈의 신학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1. 칼빈과 로마가톨릭교회의 주교이며 추기경 사돌레토 와의 논쟁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교리는 종교개혁 신학의 기본 신조(sybilum)였다. 실제로 칼빈의 회심은 다른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의 회심과 마찬가지로 본질상 이 교리와 그 안에 함축된 의미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들이었다.
이신칭의 교리를 이해하려고 하면, 그것을 역사와 논쟁의 배경에 놓고 보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좋다, 1539년 3월 프랑스 남부 카르팡트라스의 주교 추기경 사돌레토(Sadoleto)는 제네바의 행정관들과 시민들에게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칼빈은 여기에 대해 그해 8월에 답장을 보냈다. 이 두 편지를 읽어보면 이신칭의 교리를 이해하는데 아주 유익하다, 당시 칼빈과 파렐(Farel)은 그 1년 전 1538년 4월 제네바에서 이미 추방당했으며, 1941년이 될 때까지 제네바로 돌아오지를 못했다.⌊종교개혁 논쟁 : 사돌레토 주교의 편지와 칼빈의 답장(A Reformation Dbate :Sadoleto' Letter to the Genevans and Calvin's Reply)
사돌레토는 세련되고 재치가 있는 논법으로 제네바 시민들의 선한 판단과 호의와 지혜, 사리에 호소했다. 그는 두 가지 문제“교회의 권위의 문제와 이신칭의 교리문제”를 제기하였다. 칼빈은 이 두 가지 문제 모두를“교회가 행위로 말미암은 의에 의존한데서 비롯된 오류”에 관한 것으로 보았다.
사돌레토는 칭의 과정에 반드시 선행이 포함된다고 보았다. 이런 견해는 사람을 의롭게 하는데 있어서 행위가 아무런 공로나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칼빈의 확신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견해였다. 이 문제는 칼빈과 오시안더(종교개혁 당시 루터교 목사)를 번번히 갈라놓은 쟁점 - 전가된 의 對 본질적 의(종합적 칭의 對 분석적 칭의) - 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분석적(analytic) 칭의의 견지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을“분석”한 터에서 심판하신다고 본다. 칭의는 이미 사람이 행해 놓은 선행에 근거한다고 본다. 종합적 칭의의 견지에서는 심판이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며, 그런 다음 이 의가 칭의 받는 사람에게 부여된다고 본다.
칼 홀의 분석적 칭의
칼 홀(Karl Holl, 1866~1926, 독일 튜빙겐 대학과 베르린대학 신학과 교회사 교수, 루터 연구로 루터르네상스를 일으키는데 기여. 루터의 칭의론을 루터신학의 중심으로 다룸)은 이 쟁점을 다시 현안으로 만들었다. 베르카워(1903~1996, Gerrit Berkouwer, 화란 자유대학교교 교의학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Faith and Justification, p.15) : 종합적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근거로 죄인을 의롭다 하는 하나님의 선언적 심판으로 이해되었다.
홀은 루터가 이 견해를 배척했다고 이해했고, 홀 자신도 이 견해를 배척했다. 홀에 따르면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 하실 때, 종합적 심판 곧 법정선언 이상의 일을 하신다. 사람을 의롭게 만드신다. 만약 하나님이 실제로는 불의한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면 부정직하게 되실 것이다. 하나님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실 수 없을 것이며, 불의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실 수 없다. 그렇다면 칭의는 사람을 마치 의로운 것처럼 다루는 허구가 되고 말 것이다. - 홀의 이런 견해를 가지고 숙명적인‘것처럼’(as though) 이라고 한다. 그런 칭의는 쇄신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외적 전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홀이 원했던 것은 분석적 칭의다. (p.16) “하나님이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것은 실제로는 새롭게된 사람에 대한 분석이다. 홀은 칭의를 이렇게 봐야만 칭의와 성화를 관련지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정직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사람의 의는 하나님이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의가 실재하지 않고 실재할 것을 예측도 할 수 없다면, 칭의교리는 가공적인 교리로 전락된다.”
사돌레토의 의도
사돌레토의 편지에는 칭의와 성화를 구분한다고 본 종교개혁자들을 겨냥한 흔적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칼빈의 견해를 반대하는 입장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칼빈이 사돌레토를 논박할 때 경건에 호소했듯이, 사돌레토 역시도 칼빈을 논박할 때 경건에 호소했다. “내가‘오직 믿음으로’라고 할 때는 진기한 이야기를 창안해 내는 자들이 말하듯이 하나님께 대한 단순한 믿음과 신뢰를 뜻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간직하고 살아야 할 정절과 그 밖의 의무들을 제쳐둔 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피안에서 내 모든 죄가 잊혀진다는 것을 내세운다. 물론 이것은 필요한 일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맨 처음에 지나가야 할 관문이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경건한 마음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을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A Reformed Debate, p.35)
겸손과 교만 논쟁
사돌레토에 따르면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단순한 믿음과 신뢰뿐 아니라“모든 덕의 머리이자 주인인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소망과 의욕도 뜻한다.(36) 사돌레토는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겸손을 원한다. 그러나 칼빈도 겸손을 원했지만, 칼빈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공로도 없음을 진정으로 깨달아야만 겸손해 질 수 있다고 느꼈다. “… 이 겸손은 자신의 비참상과 결핍(lack)을 진실하게 자각하고서 꾸밈없이 마음을 굴복 시키는 것이다.”(Ⅲ.12.6).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 안에서”만 소망을 품을 수 있다.(A Reformed Debate, p. 72) 또한 사돌레토와 칼빈의 논쟁에는 상대방의 교만을 점잖은 표현으로 서로 비난하는 말이 나온다.
사돌레토는 종교 개혁자들이 그스도인답지 못하게 교만했다고 비판했고, 제네바 시민들에게 겁을 줌으로써 교회의 권위를 겸손하게 순순히 받아들이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하였다. 칼빈은 말씀의 권위 앞에서 서약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가장 큰 교만으로 보았다. 두 사람은 이 논쟁을 생사가 걸린 문제로 보았다. 사돌레토는 이 논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온 교회와 일치하고 교회의 법령과 율법과 성사(confession)들을 충분히 준수하는가, 아니면 분열과 진기함을 추구하는 사람들 편에 서는 가를 판가름하는 논쟁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것이 대로가 두 방향으로 갈리는 지점이다. 한 길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고 다른 길은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한다.”(42). 분파주의는 언제나 사탄의 일이다.(46). 그러므로 제네바 시민들(당시 칼빈은 그들을 떠나 있었다)은 “다시 돌아와 우리와 합류하고, 우리 어머니인 교회에 충성스런 존경을 바치고, 우리와 한 정신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한다”하였다(48).
잠언 22:4 (흠정역)“겸손함과 (주)를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재물과 명예와 생명이니라.”의 말씀에서 겸손의 히브리어 ānāvāh 의 어원은 humility(겸손), meekness(온유)의 뜻을 가진다.
칼빈과 사돌레토의 칭의론. 대립 양상 그리고 대토론(大討論)
칼빈은 사돌레토의 계략에 분개했을 것이며 또한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런데 이 논쟁에는 매우 중요한 신학 논쟁점들이 걸려있다. 그 논쟁점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언제나 그렇듯이, 경건이 크게 부각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열정을 가장 주된 존재 이유로 삼지 않고, 생각을 사람 자신에게 너무 많이 가두는(국한시키는 것은) 것은 그리 건강한 신학이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2) 승천(對) 성육신(incarnation)을 종교적 경건과 예배의 중심으로 여기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58) “…그리스도인은 자기 영혼 구원을 추구하고 확보하는데서 기뻐하는 춤을 추지 말고 더 높이 올라서야 한다.”그러므로 우리는 서둘러“높은 의미의 부르심”에 응해야 한다.
(3) 유대주의 또는 율법주의적 경건주의라는 비판이 흥미로운 방법으로 오갔다. 사돌레토는 칼빈이 구약 성경에 대한 관심을 되 살렸다는 이유로 칼빈을 유대주의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칼빈은 종교개혁자들이 의식(儀式)들을 대폭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이신칭의 교리는 “우리 두 사람간의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쟁점이다. 칼빈은 …이신칭의에 대한 지식(knowledge)이 사라지면 그리스도의 영광(Glory)이 소멸(extinction)되고, 신앙이 폐지(abolition)되고, 교회가 망하며(fail), 구원의 소망이 철저히 무너진다(collapse).”(66)
칼빈은 성경에서 의롭다(Justify)라는 단어가 “사람 자신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관련되며, 그것은 죄인이 받아야 할 보응과는 정반대로 그의 불의(abolition)를 전가하지 않고, 그를 의롭다고 받아들인다.”고 말한다.(67) 그럼에도 종교개혁자들은 행위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행이 칭의에 어떤 몫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의인의 삶에서 선행의 권위 자체는 긍정한다. 칭의를 얻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소유한다. 그리고 성령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그리스도도 계시지 아니한다. 감사함으로 받은 의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것이며, 거듭남과 필연적으로 관련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68)
칼빈은 기독론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인간의 육체가 되었는가? 이 질문에 함축된 의미들이 칼빈의 신학 전체에 고루 퍼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칼빈은 유한이 무한을 포함할 수 없다.("finitum non capax infiniti")는 것을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항상 시인한다. 그리고 승천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신적 권능(성령)은 이제“온 누리에 퍼져있고, 어떠한 제약에도 한정되어 있지 않다.” - “동일한 그리스도가 그 광대하신 신성으로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계시지만, 인성으로는 모든 곳에 계시지 않는다.”(70) 그러므로“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을 땅의 요소들로 낮춰서는 안 된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본질이 우리의 본질과 혼합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비단 하나님과 사람을 모두“영적 본질”로 표현함으로써 혼합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도 하지만 그렇지는 읺다. 플라톤은 영적“본질들”또는“존재들”이 서로 혼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칼빈이 말하는 칭의는 이렇다.“하나님이 의인들에게 지니시는 호의로 우리를 받아들이시는 것. 그리고 우리는 칭의가 사죄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轉嫁, imputed)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Ⅲ.11.3). 여기에서 전가의 상태란?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회개가 삶 전체를 포괄하듯이, 칭의도 그렇다고 보았다. 이런 점들이 칼빈 신학의 특징이며 장점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그리스도의 의도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롬 5장) 칼빈은 객관적이고 법정적인 칭의교리를 말한다. 그럼에도 제3권의 취지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 힘입어 이루어지는 우리의 실제적인 경건 생활이 뒷받침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칭의 교리는“신앙을 떠받쳐주는 주요 돌쩌귀(경첨, hinge)이다. … 이는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면, 구원을 세워 가거나 하나님을 향해 경건을 세워갈 기초를 갖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Ⅲ.11.1)
2. 이신 칭의론에 대한 또 다른 논거들
1) 루터와 칼빈의 칭의론 인식. 단죄된 오시안더. 웬델이 본 칼빈
루터는 칭의가 교회를 세우거나 무너뜨리는 조항(clause)이라고 말하였으며, 칼빈은 신앙이 결려있는 주요 돌쩌귀(hinge)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Ⅲ.11.1).
웬델(1905~1972,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종교개혁사 전공, 박사논문“칼빈, 그의 종교개혁사상의 근원적 발전”)은 칼빈에 있어서 칭의는 개별적인 것이나 중생과 떨어질 수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스도께서“거룩하게 하시지 않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법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Wendel, 256).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의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옷 입는 순간부터 완전하게 시작하는 반면에, 성화에 대해서는 현세에서 단지 시작만 할 뿐이다. 칼빈의 이런 논지는 루터와 그의 제자들이 칭의에 대해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점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Wendel, 257). 오시안더는 비록“루터교도”였지만 이 점에서는 루터교 사상의 주류와는 크게 달랐다. 이후 루터교 동료들은 그의 견해를 단죄했다. 다음 세 가지 는 오시안더의 견해이다.
(1) 새 생명을 칭의의 결과로 삼지 않고, 토대로 삼았다는 점
(2) 구속과 칭의를 떼어 놓았고
(3) 우리의 상태를 우리의 의와 구원의 기초로 삼으로써 비참한 죄인들로부터 구원의 확신 을 앗아갔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대해 원델은 지적하기를, 오시안더는“칭의 목적이 신자들로 하여금 실제로 의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사죄를 부차적인 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칼빈은 사죄가 칭의의 기초를 이룬다고 보았다.(258)
2) 웬델은 칼빈의 시각을 이렇게 보았다.(259)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轉嫁, imputed) 된다는 교리의 논리적 귀결(conclusion)은 우리가 사죄를 받은 뒤에도 실제로는 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칭의와 함께 시작하는 성화가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죄를 예리하게 자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오시안더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반면에, 칼빈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3)“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뜻이 무엇인가?
칼빈은 우리가 믿음의 중재(arbitration)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 믿음은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결시킨 결과로 본다. 그럼에도“믿음이 소유하는 칭의의 능력은 행위의 가치에 있지 않다. 우리의 칭의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공로에만 근거하며, 믿음은 칭의를 붙들 때 의롭게 한다고 한다. 믿음이 의롭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에 무슨 가치가 있어서 우리에게 의를 확보해 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값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Ⅲ.18.9). 믿음은“하나님이 철저히 값없이 베푸시는 선물”이며 “믿음이 칭의에서 발휘하도록 요구되는 역할을 지나치게 많이 강조하게 되면, 믿음을 공로로 내 세울 수 있고, 그렇게 공로로 내세우는 만큼 그리스도의 사역과 하나님의 영광은 감소한다.”(Wendel, 263)
4) 칭의에 대한 순수한 전가 개념을 뒷받침하는 데 있어서 야고보서 2장에 담긴 의미와의 관계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사람은, 행위로 말미암은 의를 포기하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고 그것을 옷 입으며, 하나님 앞에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나타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의를 단순히 하나님이 의인에게 지니시는 호의 안으로 우리를 받으시는 일로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칭의가 사죄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구성된다고 말한다.(Ⅲ.11.2). 그러나 여기에 추가로 덧붙여야 할 점은 웬델이 진술했듯이(258),“전가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가 지니는 뗄 수 없는 두 양상이다. 한 양상(樣相)이 없으면, 다른 양상도 존재할 수가 없다.”
5) 칼빈이 본 오시안더의 이단성
칼빈은 오시안더가 하늘과 땅, 하나님과 사람을 뒤섞는 것이라고 보았다.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을 논하는 부분에서 그를 비판한다. 오시안더는 하나님의 형상의 좌소가 영혼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그 형상을 전인(全人, 지정의를 갖춘 인격체)과 관련지었다. (루터와 이레나이우스도 그랬다: 육체를 중시하는 시각에서 본 통일된 전인).
(참고) 이레나이우시스: A. D. 130~200 리옹의 감독. 인간은 혼, 영, 몸의 결함과 연합으로 구성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다고 주장.
칼빈은 육체가 하나님의“섬광(flash)들”을 가지고 있다고 시인한다.(예를 든다면 하나님 앞에서 곧추선<stand upright> 자세). 여기에서 칼빈의 플라톤 주의가 엿보이며, 이것이 그에게 하나의 장애로도 보인다는 것이다.(참고: 김영수, 칼빈과 삼위일체교리. 2014. 01.05. 코람데오닷컴)
칼빈은 내세를 중시하고 상대적으로 현세를 내세보다는 낮추어 보았다. 자기 부인과 내세의 삶에 대한 묵상을 강조하였고“유한에 무한이 포함된다”는“본질적 의”개념을 모두 비판한다.
6) 전가된 또는 법정적(forensic) 칭의에 대해서는 as if(것처럼) 개념을 크게 강조한다.(Ⅲ.11.3;1,10).
베르카워는 법정적(forensic)이란 용어가 크게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주장한다.
“법정적 칭의는 죄인이 의인이라는 불가해(不可解性, incomprehensibility)한‘선언’이 아니다. 실제로는‘검은’것을 가리켜‘희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가 행위로서,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는 행위다. 법적이란 용어는 칭의 교리에서 비실재 또는 가장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은‘것처럼’의 문제가 아니다.(499).
7) 동방과 서방 기독교에서의 속죄와 칭의에 관한 두 가지 개념.
일반적으로 동방교회는 오리겐의 영향을 받아 신화(神化); 신비주의적 경향이 있다고 보고 있다.(Origen 185 ~ 254. 순교자, 제롬에 의하면 6,000편을 저술했다고 하며, 18세에 교리문답학교 교장을 하였다고 함. 알렉산드리아 출생 초대교부).
서방교회는 터툴리안의 영향을 받아 전가; 법적 경향이 있다.(Tertullian, 150 ~ 225. 아프리카인 초대교부. 로마에서 법률가로 일한 변증가). 초대교부 터툴리안이“나는 알지 못함으로 믿는다.”고 하였으며 그는 “삼위일체”라는 신학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학자이다.
칼빈은 성자와 성령의 사역(칭의와 성화)는 구분되지만 뒤섞이고 혼동되지 않는다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가 작성한 신조를 삼위일체 신학에 사용한다. 칼빈은 이 신학을 근거로 바울과 일치하여“칭의에는 행위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Ⅲ.11.6) 그러나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고 한 점을 항상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8) 칼빈과 오시안더의 다른 점
오시안더: 그리스도는 신성에 관하여 우리의 의다. 칼빈은 그리스도는 인성에 관하여 우리의 의다. 왜냐 하면
(1) 그렇지 않으면 성부나 성령께서도 우리의 의일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받으신 고난과 죽음이 아무런 효과도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시안더는“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이 우리 안에 주입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본질적으로 의롭다.”고 주장하였다.
9) 칼빈의 행위 구원론 배척 그리고 진정한 겸손이란?
칼빈은 칭의에서 행위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비참한 죄인임을 우리 자신이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겸손은 유순함과 가깝다고 한다. 사돌레토에게 보낸 답장(p. 72)에서 유순함(docilitas)과 가깝다. “겸손이란 이름을 지니는 모든 종류의 비하(卑下)가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형태를 지닌 겸손만 참되다고 가르친다.”
“믿음은 성부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을 주장하고 묵상할 때 비로소 참되다.”칼빈은 무엇보다 경건, 소망, 확신, 찬송을 강조하였다. “…신자들은 천국 유업을 소망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음으로 써,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은 사실에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호의를 되찾는데 우리가 아무것도 보텔 수가 없는 상태에서 그리스도에게 은혜로 받은 것이다. 칭의에 관한 믿음은 단지 수동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Ⅲ.13.5).
3. 루터와 칼빈의 이신 칭의론
루터와 칼빈 그리고 초기의 모든 종교개혁자들은“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기독교신앙과 교리의 주요 조항 곧“교회를 세우기도 하고 넘어뜨리기도 하는 조항”으로 여겼다. 이는 이신 칭의 신학의 근본 개념이나 사상을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 에 따라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는 의미심장한 일언이다.
루터와 칼빈은 모두“사람은 본질로서가 아니라 전가(轉嫁, imputed)에 의해서”의롭다.(Ⅲ.11.11). 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서“그리스도의 순결을 부여 받은 것처럼”나타난다.
칭의와 성화는 그리스도와 맺은 연합의 띠에서 나온 유익이다.
칼빈에 있어서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되 분리되지 않는다. 칭의는 행위로 말미암지 않지만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거룩하게 하시지 않는 사람을 의롭다하시지 않는다. 비록 우리는 둘을 구분하지만“그리스도께서는 자신 안에 둘을 모두 포함한다.”(Ⅲ.16.1). 이 어조(tone)는 451년 칼케톤 신학으로 그리스도의 본성을 구분되되 분리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화는 현세에서 시작되며, 신자가 아무리 괄목할 만한 진보를 이룩할지라도 여전히 죽을 때까지 죄인으로 남는다. 반면 칭의는 처음 받는 순간부터 완전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한 의에 옷을 입혀 주시는 것처럼 완전하다.(Ⅲ.11.11) 이 점에 관해서 칼빈의 견해는 신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루터와 루터교가 칭의에 대해 일방적으로 강조한 반면, 칼빈과 칼빈주의는 칭의와 성화가 동일한 가치를 지닌 하나님의 두 가지 은혜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매우 의미심장한 교리이다.
칼빈은 이신칭의를 이해하기 쉽도록 여러 가지로 정의하면서도 일관된 노선을 따랐다. 그의 주된 생각은 이렇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사람이란, 행위로 인한 의와는 상관없이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고, 그것을 옷 입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나타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의를 하나님께서 호의를 베푸심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받으시는 그 받으심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칭의는 사죄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구성된다고 말한다.(Ⅲ.11.2).
“옷 입다.”또는 “가리우다.”라는 개념은 - 매우 법정적인 - 용어들로서 이 모든 것은 칼빈이 제시하는 대부분의 정의에서 두드러진다. “…우리는 칭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리스도와의 사귐 안으로 받아들여진 죄인이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입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아 사죄를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마치 자신의 옷처럼 입고, 그로써 하늘 법정에 확신을 가지고 서는 것이다.(Ⅲ.17.8). 죄인에게 불완전한 모든 것은 이제”그리스도의 완전으로 가리움을 받고, 하늘 법정에서 조금도 의문이 남지 않도록 모든 일은 얼룩이 깨끗이 씻겨 진다.”(Ⅲ.17.8).
그러므로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외적이고 오직 우리에게“전가”되었을 뿐인 의를 강조한다. 이미 1536년 칼빈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Opera, 1, 60): “믿음으로 얻는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서, 우리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있지만, 전가에 의해 우리의 것이 된다. … 우리는 전가에 의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실제로는 의롭지 않다.” 칼빈은 오시안더 와의 논쟁을 하면서 그쪽으로 생각이 더욱 확고하게 굳어졌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의인으로서 “죄인”이 되신 것과 같은 방법으로 - 즉 전가에 의해서 - 죄인이 아니지만, 그러나 실재는 결코 의롭지 않다. 따라서 사실상으로 칭의에 따르는 성화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우리의 죄를 자각하게 만든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종이 되시기까지 순종하신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시안더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적 본질에 힘입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 반면에, 칼빈은 우리가 그분의 인성에 힘입어, 즉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끌어 올리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일에 힘입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은 뒤에도 행위가 계속해서 죄에 오염된다.
이중칭의는 트렌트 공의회에서 수용된, 전가된 의와 내제적 의, 웨슬리 전통에서 믿음으로 얻은 일차적 칭의로 믿음 이후에 그에 따른 선행으로 인해 인정되는 의를 가르치기도 하며, 마르틴 부처의 칭의론도 이중칭의론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Ⅲ. 결론
1. 이 시점에 우리 교회에 주는 경각심(警覺心)이 무엇인가?
우리의 과제
특별히 우리 고신개혁주의 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신학 사상을 거슬리는 어떤 주장들을 엄격히 배격해야 된다. 이에 제2종교개혁의 과제들을 염두에 두고서, 그 목적과 추진 방안들을 연구하고 제시해야 한다. 이신 칭의 교리와 관련하여 교회를 허물거나 무너트리는 일체의 주장들은 근절되어야 된다.
칼빈은 항상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1과업으로 삼고, 염두에 두고 살았다.
총신대의 정훈택 교수는 박윤선 박사가 이신칭의에 대해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위, 윤리, 사회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정훈택“행위의 구원론적 의미(Ⅱ)”,⌈신학지남⌋237(1993 가을). 114. 김세윤 교수의“유보적 칭의론”은 행위구원론에 무계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주장들의 원류는 종교개혁 당시에 생존했던 사돌레토 주교와 오시안더 목사 등이다. 500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에, 지금도 우리 개신교회 안에서 조차 끊임없이 이색적인 다른 교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신학과 교리와 같은 중요한 문제는 밑바탕 뿌리가 다른 사람들과는 같이 어울리거나 접촉을 금하는 것이 좋다. 신학이 조금 이상한 분을 함부로 초청해서 토론을 하게 되면, 어린 분별력이 없는 교인들이나 신학도 들이 혼란을 일으키게 되며, 그 말을 듣고서는 엉뚱한 주장에 솔깃해서 옳은 말인 냥 착각하고, 속아서 따라가게 된다. 심지어는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모 교수는 영국과 독일에서 비평신학을 공부한 분으로 알려져 있다.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분이다. 심지어는 외경까지도 마음대로 인용하는 등 성경관이 올바르지 않다고 소문이 나있다.
필자가 재직 당시 우리 신학교의 송도 시절에, 강의를 했던 어느 분이 이상한 신학을 주장하다가 문제가 되어 학생들이 반발하고 들고 일어난 적이 있었다. 모씨 그분은 여성안수를 적극 찬성하고, 목회 서신은 후대 작품이라고도 하였고, 사도 바울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니, 참으로 곤란하다. 지금도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히브리서 구절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모 교회에서 설교 할 때 주장했다는 소문은 우리 교회에 두루 퍼져 있다. 혹시라도 그런 분을 초청하여 12월에 우리 신학교 교수들과의“이신 칭의론”토론회 계획이 있다면 신중히 고려함이 좋다.
2. 고신 개혁주의 교회의 지향 점
우리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총회 산하 교회가 종교개혁의 유일한 신앙 전통을 유산으로 이어 받았다는 것은, 우리 교회가 개혁주의 교회임을 표방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다. 우리 교회는 개혁자들의 신학적 사상을 공유하면서 이를 공감하고, 나아가 이 사상을 우리의 신조로 고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개혁주의 교회들은 정기적으로 공의회와 같은 총회를 열어, 주로 교리와 신학 적 제문제를 다루면서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부절히 노력해왔다. 개혁주의는 교회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성경에 가장 충실한 공교회적 신학 전통을 의미한다. 우리 고려파 교회는 성경의 신적 권위와 완전영감, 축자영감, 성경무오를 믿는다. 우리 교회의 신학은 역사적으로 칼빈 신학의 전통을 근간으로 하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우리교회의 신앙고백서로 받아들인다. 우리 교회의 선진들은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강조해 왔으며, 순교정신과 코람데오 신전 의식은 우리 교회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신앙 모토이며, 칼빈주의 신학은 우리교회의 공교회적 신학 전통이다. 이런 점들이 우리 고신교회의 신학사상으로서의 목표 지향점이다.
제2 종교개혁의 필요성은 신학을 수학하고 전수받았던 교회의 선생된 지도자들의 제문제로 귀결된다. 이단성이 있는 학설이나, 신학사상을 주장하는 증상들은 여기저기에서 계속 출몰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 자체가 말세의 증상이라고 하겠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제2종교개혁은 하나의 과제로 남는다. 
김영수  kys70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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